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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톡스

AI 없는 하루: 알고리즘과 떨어져 살아본 경험

알고리즘에 둘러싸인 일상, 자각조차 없었다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부터 우리의 일상은 AI의 흐름 속에 들어선다. 음악 추천, 뉴스 피드, 영상 콘텐츠, 날씨 정보, 심지어 아침 메뉴까지—우리는 대부분의 선택을 알고리즘의 제안에 따라 움직인다. 처음에는 편리함이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기계가 나의 취향을 분석해 필요한 것을 먼저 제공해주는 시스템은 매우 매력적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선택하고 있는가, 선택당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퇴근 후에도 자동 재생되는 영상에 시간을 뺏기고, 소셜미디어에서 유사한 정보만 반복적으로 접하며 사고의 폭이 좁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생각—“AI 없이 하루를 살아볼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알고리즘 없이 24시간을 살아보는 작은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디지털 디톡스가 아닌 ‘알고리즘 디톡스’였고, 그 경험은 생각보다 더 낯설고 깊은 통찰을 안겨주었다.

AI 없는 하루: 알고리즘과 떨어져 살아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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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침묵, 정보 자극 없는 시작

실험은 아침 알람을 스마트폰이 아닌 아날로그 시계로 설정하면서 시작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알람을 끄고 바로 뉴스를 확인했을 테지만, 그날은 화면을 보지 않고 커튼을 열어 자연광을 먼저 맞았다. 뉴스 앱, 날씨 앱, 교통 정보 앱 없이 출근을 준비하니 처음엔 불편했지만,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생겼다. 무엇을 입을지, 우산을 챙길지, 시간 여유는 얼마나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AI가 없는 아침은 훨씬 느렸지만, 그 느림 속에 나의 ‘주체성’이 있었다. 매일 아침 누군가가 ‘오늘의 시작을 알려주는 정보’를 정해주는 대신, 내가 나의 판단으로 하루를 여는 과정은 생경했지만 특별한 감각을 깨웠다. 단순한 정보가 주는 편리함보다,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에 내 존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선택의 연속, 피로하지만 자유로운 하루

직장에 도착해서도 알고리즘은 내 곁에 없었다. 음악 스트리밍 앱 없이 음악을 들으려니 처음엔 무척 어색했고, 유튜브도, 인스타그램도, 검색 포털도 모두 차단해둔 상태였다. 점심 식당을 고르는 일도 평소엔 리뷰 순으로 자동 정렬된 맛집 리스트를 따라 움직였지만, 그날은 그냥 골목을 걸으며 마음 가는 곳에 들어갔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보다 ‘추천된 것’에 기대어왔던 나의 소비 습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선택의 순간마다 머리가 복잡해졌고, AI 없이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많은 ‘결정’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피곤했지만, 동시에 묘한 해방감도 있었다. 누군가가 만들어둔 가장 효율적인 경로가 아닌, 나만의 감각과 기준으로 하루를 살아간다는 사실은 낯설지만 자극적이었다. 자유는 생각보다 무겁지만, 그 무게가 나를 더 깨어 있게 만들었다.

 

정보의 홍수에서 벗어난 감각의 회복

가장 큰 변화는 ‘정보로부터의 거리’였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던져준다. 지금 인기 있는 콘텐츠, 실시간 트렌드, 사람들의 반응 등은 나에게 꼭 필요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나를 자극한다. 그러나 그날은 의도적으로 이러한 정보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인터넷 뉴스를 보지 않으니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 듯한 불안이 잠시 스쳤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감각’이었다. 점심시간에 혼자 식사를 하며 주변 소리를 듣고, 길을 걸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오랜만에 찾아왔다. 눈으로 스크롤하는 대신 발로 걸었고, 이어폰 대신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알고리즘이 채워주던 자리를 스스로의 감각으로 채워보니, 뇌가 쉴 틈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감정의 흐름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리는 데는 이 하루의 공백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인간적인 하루, AI 없는 대화의 깊이

알고리즘 없이 살아본 하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누군가와의 대화였다. 스마트폰이 멀어진 대신, 사람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친구와의 점심 자리에서 대화 중간에 알림을 확인하지 않으니 상대방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눈빛과 표정, 말의 맥락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우리가 무심코 반복하는 ‘고개 숙인 대화’ 속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또한 AI 기반 채팅이나 검색 없이 나의 기억과 경험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과정은 불완전하지만 그 자체로 더 인간적이었다. 알고리즘은 효율적이지만, 인간은 느리고 삐걱대지만 더 깊다. 이 경험은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틈 사이로 스며드는 인간 본연의 감각과 교감을 되살리는 기회였다.

 

알고리즘에서 한 걸음 떨어진다는 것의 의미

하루를 AI 없이 살아보는 실험은 단순히 기술을 거부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선택을 위임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 내가 얼마나 자동화된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 시간이었다. 알고리즘은 분명 유용하고,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판단력, 감정, 감각을 무디게 만들 수도 있다. 하루 동안 의도적으로 알고리즘에서 거리를 두었을 뿐인데, 나는 훨씬 더 명료하게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주변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 체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완전히 AI를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선택하는 기술 사용’이라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날 이후 나는 하루 중 일정 시간만큼은 알고리즘과 거리를 두는 습관을 만들었다. 인간다운 삶은 때때로, 기술을 잠시 멈추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